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테이 토모야스 (문단 편집) == 가족사 ==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혼혈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이며 일본 국적이다. 자신의 데뷔 25년이던 2005년에 발간한 자서전 <비밀(秘密)>에서 처음으로 밝힌 내용이다.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다니며 [[무역]]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호테이의 집에 달린 명패에는 "야나가와"라는 명패와 "호테이"라는 명패가 같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호테이는 왜 자신은 엄마의 성씨인 호테이인지 궁금해했고, 어머니는 "호테이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란다."라고 알려줬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여기에 큰 충격을 받은 호테이 토모야스는 평생을 "나는 누구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를 고민하였다 하고 그 계속된 고민으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아이덴티티|IDENTITY]]를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는 [[한국]]에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일본]]에 살림을 또 차렸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호테이네는 '일본용 가족'이었다. 결국 호테이가 고교 3학년 무렵 두 사람이 결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국적이 없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아버지의 빚을 몽땅 떠안게 되어 힘든 생활을 보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나중에 보위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호테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을 통해 아버지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기 전에 호테이 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연락이 닿은 적이 있었던 때, 호테이의 여동생은 "이제는 만나서 사과를 받자"고 했지만 호테이는 끝까지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결사반대를 해서 무산됐다. <사무라이 픽션>이 국내 개봉되고 배우 자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의 한국인 자녀(즉, 호테이의 이복 형제)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 내용에 한국의 가족도 무너져서 힘든 세월을 보냈고 아버지는 1992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는 내용과 함께, 아버지가 일본의 가족들에게 늘 사죄하며 후회했으며 자신이 버리고 온 아들 호테이에 대한 미안함과 일본 내 최고의 록 밴드인 보위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활동에 관련한 신문 기사, 비디오, 앨범 등 모든 것을 소장하면서 보위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를 자랑스러워했단 사실,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1988년 당시에 보위의 마지막 [[도쿄돔]] 콘서트를 찾아갔다는 사실 등의 호테이가 몰랐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당시 호테이 토모야스의 아버지는 티켓을 구할 수 없어 도쿄돔 외벽에 귀를 대고 공연을 들었다고 한다.] 이 편지를 받고서 그 당시에 엄청나게 울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다. 현재는 자신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서전 발매 이후 추가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단지 이전보다는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2023년 9월4일 샤베쿠리007 방송에 출연했는데, 주제가 어린 시절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창들이 출연해 에피소드를 말했는데, 엄청 부유한 집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가족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호테이 토모야스가 말하길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유복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다만 무역업에 종사해서 절반은 일본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계나 러시아계에 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